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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Eat] 치즈·견과류 품은 순대…철판위 고소함 `지글지글`
Date. 2020.09.10
Hit.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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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칼바람에 쫓겨 들어간 서울 대학로 맛집 `순대실록`에서 순댓국의 후끈한 열기가 훅 끼쳐왔다. 새우젓으로 간 맞추고 송송 썬 부추를 넣자 얼큰한 국물이 몸속 냉기를 밀어낸다. 연말 술과 스트레스로 지친 사람들 속 푸는 데 이만한 해장국이 또 있을까. 땀 흘리면서 먹고 나면 이 세상 시름은 온데간데없다. 이 집 순댓국 가격은 7000큰 부담 없이 한 끼 허기를 채워주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여느 순댓국집과 달리 국물이 참 깔끔하고 담백하다. 진한 국물을 꺼리는 대학로 젊은이들을 위해 맑게 고아냈다. 서울 마장동 축산도매시장에서 사온 돼지 정강이뼈와 머리뼈를 14시간 끓였다. 겨울에는 가스불이 약해지기 때문에 15시간 걸린다. 육경희 순대실록 대표(52) "어르신들은 구수하고 진한 국물을 좋아하지만 젊은 층은 개운한 국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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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주요 고객층 입맛을 맞춘 덕분에 주말에는 하루 10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대박이 났다. 재료가 금방 소진돼 늘 신선한 돼지뼈와 고기, 내장을 쓸 수 있다. 돼지 특유의 잡내가 안 나는 비결이기도 하다. 육 대표는 "결국 좋은 재료가 순댓국 맛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이 식당의 별미는 따로 있다. 바로 `순대 스테이크(가격 14000)`. 뜨겁게 달군 철판 위에 둥글게 말린 순대가 지글거리고 있었다. 칼로 적당히 썰어 입에 넣으니 뭔가 씹히면서 고소하다. 피순대 안에 모차렐라 치즈와 흑미, 서리태, 땅콩, , 해바라기씨 등 견과류가 들어 있었다. 견과류는 항산화 식품이라 `젊어지는 순대`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검은깨와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에 찍어 먹으면 고소함이 배가된다.
 
 
이 집 피순대는 돼지 앞다리살과 선지, 당근, 두부, , 당면, 찹쌀, 대파, 배추, 미나리, 양배추, 삶은 무, 양파, 부추 등 22가지 재료를 창자에 넣어 만든다. 스테이크용 순대는 물기 많은 무와 배추, 미나리, 선지를 빼고 견과류와 마늘, 표고버섯으로 채운다. 구울 때 야채 수분이 나와 순대 속이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야채 순대는 피순대에서 선지만 제외하고 쪄낸다.
 
 
문득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순대를 먹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기록상으로는 조선 중기에 개와 소 창자에 속을 넣은 순대가 등장한다. 1670년경 쓰인서적 `음식디미방`에 개고기와 후추, 천초, 생강, 참기름, 간장을 창자에 넣어 찐 음식이 나온다. 1600년대 말 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방문`에는 소 선지와 밀가루, 매운 양념을 창자에 넣은 요리법이 쓰여 있다.
 
 
육 대표는 조선 후기인 18세기 말 쓰인 전통 음식 서적 `시의전서`(저자 미상) 속 순대를 복원해 현대인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 한정식집을 운영하다가 순댓집으로 전향한 그는 2011년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순대 관련 서적을 공부하던 중 이 책에 `도야지 ?`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을 발견했다. 조리법도 적혀 있어 재현해봤다. 숙주와 미나리, 무를 데쳐서 배추김치와 두부, 생강, 마늘을 다져넣고 깨소금과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등 각종 양념을 섞어 피와 함께 주물러 깨끗이 씻은 돼지 창자에 넣고 부리를 동여매 삶았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보니 별 맛이 없었다. 식감을 높여주는 양배추와 당면 등 현대 재료와 양념을 추가해 이 식당만의 특별한 순대가 탄생했다.
 
 
순대 전문가가 된 육 대표는 "순대의 매력은 하모니라고 생각한다" "비빔밥처럼 야채와 고기, 양념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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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의 매력은 다양한 순대의 변주(變奏)에 있다. 순댓국과 스테이크 외에 철판볶음(25000), 모둠 순대, 수육 등이 식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철판 볶음의 비밀은 7일 숙성시킨 양념장에 있다. 파인애플과 사과, , 후추, 물엿, 고추장, 고춧가루, 토마토 소스 등을 넣어 달콤새콤매콤하다. 여기에 양배추와 팽이버섯, 깻잎양파, 당근, 당면 등을 넣어 경쾌하게 볶는다. 동행과 해낙낙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다.

육 대표는 "순대는 영양소가 완벽할 뿐만 아니라 영혼의 음식(soul food)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의 음식이고, 젊은이들에게는 부담 없는 한 끼 식사"라고 말했다.
 
 
수육 역시 쫄깃하고 야들야들했다. 신선한 돼지고기에 산초와 계피, 후추를 넣어 누린내를 잡아 향긋하다. 순대는 소시지와 이웃사촌 같은 음식이다. 영국 블랙푸딩은 모양새까지 닮았다. 그래서인지 순대와 맥주의 궁합이 잘 맞다. 이 식당에서 바이젠 맥주와 에일 맥주를 파는 이유다.
 
 [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