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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노릇 훈제연어 피자…화덕에 넣고 5초면 승부 끝
Date. 2021.02.04
Hit. 1,521

[이택희의 맛따라기] 로마 피자 월드컵 한국인 첫 1등

1989년 고등학생이 된 그의 꿈은 빵 굽는 빵집 주인이었다. 부모님께 얘기했다가 군인 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대학은 등 떠밀려서 경제학과로 갔다. 잠시 접긴 했지만 그의 꿈은 기어코 이루어지고야 말았다. 지난달 8~9일 이탈리아에서 제17회 로마 피자 월드컵이 열렸다. 대형 피자(Metro·Pala) 부문에서 한국인이 1위를 했다. 나폴리 세계 피자이올로 챔피언십, 파르마 세계 피자 챔피언십과 함께 이탈리아 3대(실제론 세계 3대) 피자대회 중 하나인 이 대회에서 한국인 우승은 처음이다. 주인공은 20년 전 빵집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가 타의로 꿈을 접은 바로 그 ‘소년’이었다.

 

이진형 총괄 셰프가 제 17회 로마 피자 월드컵 메트로·팔라 부문 중 팔라에 도전해 만든 피자는 크기가 폭 30㎝, 길이는 70㎝에 이르는 대형 피자다. 1차로 구워진 피자 위에 훈제 연어, 루케타(야생 루콜라) 등 2차 토핑을 더해 완성한다. 신인섭 기자

 

그는 ‘순대실록’과 ‘핏제리아오’를 직영하는 ㈜희스토리푸드 부사장 겸 R&D연구소 법인 최고책임자(소장)이자 핏제리아오 총괄 셰프 이진형(46)씨다. 회사는 조리기술로 인증을 받은 벤처기업이다. 그는 직함과 상관없이 자신을 ‘음식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피자의 메카 나폴리에서 인증받은 피자이올로(pizzaiolo·피자 기술자)이기도 하다.  

 

매년 열리는 로마 피자 월드컵에 올해는 20여 개국에서 약 300명이 출전했다. 대회는 7개 주종목과 5개 변형 종목으로 나눠 진행됐다. 주종목에는 전통 피자인 마르게리타, 마리나라, 메트로·팔라, 이노바티바(혁신) 등의 부문이 있다. 이번에 이노바티바에 출전한 한국의 불고기피자가 인기는 좋았지만 입상은 못 했다. 변형에는 디저트피자, 튀김피자, 글루텐 제로 등이 있다. 메트로·팔라 부문에는 선수 70여명이 참가했다. 폭은 30㎝로 같지만 길이는 메트로(미터)는 1m, 팔라(삽)는 60~70㎝인 큰 피자를 만드는 경기다. 이씨는 팔라에 도전했다.

 

이진형 총괄 셰프가 메트로·팔라 부문에서 우승한 피자를 재현했다. [사진 이진형]

 

심사위원들이 해산물을 선호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토핑 주재료를 훈제연어로 정했다. 준비해 간 도우(dough·숙성한 피자 반죽)를 규격에 맞게 잘 펼치고 몽글몽글 엉긴 모차렐라 치즈를 뿌린 다음 간을 하지 않은 생토마토(빨강·노랑)를 올려 350도 화덕에서 돌려가면서 3분 정도 굽는다. 꺼내 2차 토핑을 한다. 루케타(야생 루콜라), 회처럼 자른 훈제 연어, 간한 두 가지 토마토를 골고루 얹고 레몬 필(껍질 간 것)과 발사믹 소스를 뿌려 모양을 내고, 색감도 살린다. 굽기가 가장 예민하다. 크러스트(crust·도톰한 피자 둘레)와 바닥이 잘 익으면서 노릇한 색이 고르게 나야 한다. 거뭇거뭇 탄 곳이 있으면 감점이다. 발효가 지나치면 반죽에 기포가 생기고, 그 부분이 열에 노출되면 쉽게 탄다. 발효 시간과 화덕 온도를 잘 맞춰야 한다. 특히 큰 피자는 타지 않고 골고루 익히기가 어렵다. 굽는 동안 화덕 안에서 피자를 계속 돌려줘야 한다. 60~70㎝ 긴 피자를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계속 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화덕은 장작·전기를 선택할 수 있다. 간편한 전기로 많이 하지만 굽는 시간이 길어 도우가 굳는 단점이 있다. 장작은 자칫하면 도우가 탄다는 부담이 있다. 이탈리아에 미리 가서 스승이자 친구인 미켈레 쿠오모(메트로피자협회장, 올해 세계 피자올림픽 우승)의 피자 집에서 15일간 전기화덕으로 특별훈련을 했는데 실전에서는 장작에 구웠다. 한국에서 늘 장작으로 구웠고, 이날 진행요원이 전기화덕에 문제가 있으니 장작으로 바꾸면 시간을 더 준다고 알렸기 때문이다.

 

대회 수상자들과 함께 기념촬영한 이진형씨(왼쪽). [사진 이진형]

 

팔라피자는 도우 무게가 800~900g, 토핑하면 1.2㎏쯤 나간다. 이걸 피자 삽에 올리고 한 팔로 들어 한 동작으로 화덕 안에 넣어야 한다. 한 번에 넣지 못하면 모양이 흐트러진다. 이 순간에 많은 것이 결정된다. 

 

재료는 각자 준비하지만 화덕은 주최 측이 설치한 걸 써야 하는데 그 성질을 전혀 알지 못한다. 승부는 피자 한 판으로 가리기 때문에 화덕에 넣기 전후 5초 안에 성패는 대략 판가름난다. 대회에서 화덕에 피자를 넣을 때 온도가 적당한 데다 온전한 모양으로 던져 넣은 순간 ‘됐다’ 하는 느낌이 들고 입상에 자신감이 생겼다.

 

심사기준은 굽기·맛·시각평가 100점씩 300점 만점. 완성한 피자를 제출하자 심사위원들은 먼저 크러스트를 만져봤다. 밀가루가 많이 묻어나면 감점이다. 다음엔 사방으로 피자 바닥을 들춰보며 탔는지, 덜 익었는지 살폈다. 이걸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데 “문제없다”고 평가했다.  

 

피자 도우 반죽을 70 ㎝ 이상 늘리고 있다.

 

이어서 전체 형태와 꾸밈을 보는 시각평가에서는 “예쁘다”고 칭찬했다. 끝으로 피자를 자르게 해서 먹어 본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원래 칭찬을 많이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이구동성 “잘했다. 맛있다”고 했다. 남은 피자는 구경꾼에게 나눠 주는데 순식간에 동이 났다. 결과는 1등. 상품은 밀가루, 토마토소스, 피자 삽, 화덕용 장작 가운데 토마토소스를 받았다. 다른 대회도 상품은 비슷하다. 며칠 뒤 현지 SNS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1등이 중국인??? 우리는 끝났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놀라움과 시샘이 함께 담긴 듯했다. 비하하는 뉘앙스도 실린 듯해 유쾌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친구들이 “네가 1등 한 충격파가 그만큼 크다는 말이니 잊어라”며 위로해 줬다.

 

78시간 숙성한 도우, 화려한 한 상 느낌

 

장작 화덕 속에서 구워지는 피자.

 

빵의 꿈이 꺾인 이래 이날이 오기까지 밀가루와 숙명 같은 인연이 이어졌다. 본격 요리를 시작한 건 국수였다. 2005년부터 3년 동안 중국에서 밀가루 20㎏ 반죽을 손으로 다룰 만큼 익혔다. 밀가루의 성질을 많이 터득했다.  

 

우승 트로피와 타대회 메달.

 

지금도 수타면이나 도삭면이 가능하다. 2007년에는 중국에서 백종원(53) 더본코리아 대표와 ‘새마을식당’을 열었다. 4년 뒤 희스토리푸드에 합류해 2012년 핏제리아오를 개업하면서 피자·파스타와 생애를 건 결투가 시작됐다. 2012년부터 처음엔 한 해 3~4회, 요즘은 1~2회 나폴리에 가서 본고장 피자를 먹고 만들며 배운다. 그동안 맛본 피자가 수천 판이라고 한다.  

 

우승한 피자를 서울 장작화덕으로 재현해 맛봤다. 상온·저온을 오가며 78시간 숙성해 폭신하고 졸깃한 도우에 올린 토핑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살아 있어 화려한 한 상의 음식이 한입에 들어온 느낌이다. 느끼하지 않고 간간해 안주로 맞춤하겠다. 와인이나 잘 빚은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났다. 6~8명이 먹을 수 있는 이 피자는 8만9000원(이틀 전 예약, 평일만 가능)에 판매한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100% 운이다. 화덕을 비롯해 현장의 모든 여건이 도와줬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사를 했다.